
이미지출처 : book.interpark.com
박웅현은 소통, communication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통은 '발신자 → 메세제 → 수신자'라는 경로를 거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신자 → 메세지 → 발신자'라는 경로가 옳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수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다. 소통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귀가 열리는 법이다. 그러면 내가 먼저 수신자에게 다녀와야 한다.
우리는 비슷한 데가 많았다. 사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냥 '다르다'라는 말과 다른 점은 온도차이일 뿐이다. 다르다는 낱말을 따뜻하게 만들면 비슷하다가 된다. 다르기 때문에 할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생기는 것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박웅현이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선생님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창의성... 인가요?"
"녹음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맞아요, 그럼요, 그래요'였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강창래 지음
소통이 결국 열쇠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나는 내 패러다임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교묘한 타인의 시선으로 수신자를 평가하고 검증해내려 했다.
그건 사실 폭력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나의 메세지는 상대에게 부끄러운 상처를 남기고 그들을 굴복시킨다.
이건 어찌보면 아무 성과도 없이 그들의 가슴 속에 적대의식과 패배감만을 안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걸까. 내가 훼손되지 않고서 수신자에게 다녀올 수 있을까?
결국,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