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reative Director

book 2010. 1. 2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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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book.interpark.com


박웅현은 소통, communication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통은 '발신자 → 메세제 → 수신자'라는 경로를 거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신자 → 메세지 → 발신자'라는 경로가 옳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수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다. 소통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귀가 열리는 법이다. 그러면 내가 먼저 수신자에게 다녀와야 한다.



우리는 비슷한 데가 많았다. 사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냥 '다르다'라는 말과 다른 점은 온도차이일 뿐이다. 다르다는 낱말을 따뜻하게 만들면 비슷하다가 된다. 다르기 때문에 할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생기는 것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박웅현이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선생님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창의성... 인가요?"

"녹음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맞아요, 그럼요, 그래요'였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강창래 지음

 

소통이 결국 열쇠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나는 내 패러다임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교묘한 타인의 시선으로 수신자를 평가하고 검증해내려 했다.

그건 사실 폭력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나의 메세지는 상대에게 부끄러운 상처를 남기고 그들을 굴복시킨다.

이건 어찌보면 아무 성과도 없이 그들의 가슴 속에 적대의식과 패배감만을 안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걸까. 내가 훼손되지 않고서 수신자에게 다녀올 수 있을까?


결국,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배고프다.

Posted by drawing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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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가 '천국'을 만들고자 했을 때, '당신동상'을 세우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배자의 선의와 동상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닐까? 누군가 그 경계선 위에서 마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사랑과 자유, 실천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힘의 삼각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책이다. 실천의 원동력이 힘의 질서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 하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힘의 질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욱의 편지 中

운명을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절대의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운명을 살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없는 사랑이나 봉사는 한낱 오만한 시혜자로서의 자기 도취적인 동정으로밖에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절대상황 안에 격리되어진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 이었습니다....

 

전 결국 이 몇 년 동안 원장님과 원생들의 관계에서,

한 선의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의 어떤 대등한 상호 지배 질서,

만인 공유의 화창한 지배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배자가 어떤 불변의 절대 상황 속에 갇힌 다수의 인간 집단을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저항 없는 조작을 행해갈 수 있는가하는 슬픈 지배술의 시범을

보아왔던 셈입니다.

 

원장님께선 결국 이 섬 위에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놓으실 수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마도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이 즐겨 누리게 될 천국이기에 앞서 그것을 이루어내실 원장님 한 분의 획기적이고 생기 없는 천국이 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원생들은 그 자기 천국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을고 복종하는 그 천국의 종으로서 괴로운 봉사만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장님, 원장님께선 굳이 이 섬 위에 일사불란한 그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완성해내시고서야 섬을 떠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백헌 원장이 훗날 섬으로 돌아왔을 때..

참다운 사랑이란 일방이 일방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공동의 이익을 수락하는 데서만 가능한 것이었어요...

섬사람들과의 한 운명 단위 속에서 서로 믿음을 얻고 나면 일단 그 자유나 사랑을 함께 행해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 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나감은 그 자유나 사랑의 속에 깃들인 힘으로 해서일 겝니다.
사랑이나 자유의 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져 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를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Posted by drawing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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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5번째 습관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시켜라.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먼저 이야기하여 이해 받고 싶어 하며, 또한 이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듣는 것이 아니라, 대답할 의도를 갖고 듣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말을 하고 있거나 말을 할 준비만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을 통해 모든 것을 여과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신의 경험을 심어 주고자 한다.
...
 
우리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해받기를 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각자의 독백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내면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적 경청이란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즉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 감적 경청이란 다른 사람이 가진 준거틀의 내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것, 즉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들의 패러다임과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공감이란 동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감은 합의의 한 형태이며 판단의 한 형태이다. 사람들은 곧잘 동감에 의지하게 되는데 이는 사람들을 서로 종속적으로 만든다. 공감적 경청의 본질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감정적으로는 물론 지적으로도 완전하고 깊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의 추정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중 불과 10%만이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 전달 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30%는 우리가 내는 소리에 의해, 나머지 60%는 우리의 신체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공감적 경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감적 경청은 자기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투사하고 생각, 느낌, 동기, 해석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 내부에 어떤 실체가 들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커다란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또 이것은 상대방에게 '심리적 공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상당한 치료 효과도 가지고 있다. 육체적 생존 다음으로 인간에게 가장 큰 욕구는 심리적 만족이다. 이는 곧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신뢰받고 인정받으며 존경받는 것을 의미한다.
Posted by drawing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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