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가 '천국'을 만들고자 했을 때, '당신의 동상'을 세우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배자의 선의와 동상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닐까? 누군가 그 경계선 위에서 마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사랑과 자유, 실천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힘의 삼각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책이다. 실천의 원동력이 힘의 질서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 하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힘의 질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욱의 편지 中
운명을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절대의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운명을 살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없는 사랑이나 봉사는 한낱 오만한 시혜자로서의 자기 도취적인 동정으로밖에 보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절대상황 안에 격리되어진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 이었습니다....
전 결국 이 몇 년 동안 원장님과 원생들의 관계에서,
한 선의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의 어떤 대등한 상호 지배 질서,
만인 공유의 화창한 지배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배자가 어떤 불변의 절대 상황 속에 갇힌 다수의 인간 집단을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저항 없는 조작을 행해갈 수 있는가하는 슬픈 지배술의 시범을
보아왔던 셈입니다.
원장님께선 결국 이 섬 위에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놓으실 수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마도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이 즐겨 누리게 될 천국이기에 앞서 그것을 이루어내실 원장님 한 분의 획기적이고 생기 없는 천국이 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원생들은 그 자기 천국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을고 복종하는 그 천국의 종으로서 괴로운 봉사만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장님, 원장님께선 굳이 이 섬 위에 일사불란한 그 원장님의 천국을 완성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천국을 완성해내시고서야 섬을 떠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백헌 원장이 훗날 섬으로 돌아왔을 때..
참다운 사랑이란 일방이 일방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공동의 이익을 수락하는 데서만 가능한 것이었어요...
섬사람들과의 한 운명 단위 속에서 서로 믿음을 얻고 나면 일단 그 자유나 사랑을 함께 행해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 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나감은 그 자유나 사랑의 속에 깃들인 힘으로 해서일 겝니다.
사랑이나 자유의 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져 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를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